학명 Chorisia speciosa
과명


미 인 수

역사적인 가치와 아름다움을 지닌 나무

 

 공식적인 이름은 아니지만, 여미지식물원 온실에서 자라는 나무들 중에는 미인수라 불리는 나무가 있다. 수많은 야자류와 고무나무류 등 저마다 내로라하는 신기한 열대식물로 가득찬 온실 식물원에서 다른 식물보다 돋보이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이 미인수가 화사한 진분홍 꽃을 피울 때만큼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독차지하곤 한다.

미인수는 영어로 실크 플로스 트리(silk floss tree)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하면 명주솜나무쯤 될 것 같다. 잘 익은 열매 속에 새하얀 솜뭉치가 가득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 나무의 원산지인 남미에서는 술취한 나무(palo borracho)라고 부르는데, 꽃 피는 모습이 마치 축제 때 도발적으로 춤을 추는 무희를 닮아서라는 이야기도 있고, 나무의 줄기가 술병 모양으로 밑부분이 불룩하기 때문이라는 속설도 있다. 미인수의 학명은 원래 코리시아 스페키오사(Chorisia speciosa), 속명인 코리시아는 러시아 출신의 식물세밀화가 루트비히 코리스(Ludwig Choris, 1795-1828)의 이름에서 유래했는데, 최근 이 속명이 세이바(Ceiba)로 바뀌었다. 식물들은 나라마다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도 제각각이어서 혼란스러울 때가 있지만, 때로는 그러한 이름들이 그 식물을 다각도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우리 나무와 달라 신기한 특징이 아주 많은 미인수는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볼리비아, 브라질 등 남아메리카 출신이다. 이들 지역은 북반구와는 계절이 정반대여서 아마도 미인수가 처음 이곳으로 왔을 때는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리라. 아르헨티나의 경우, 보통 10월부터 3월까지가 비가 많이 오는 여름철이고 4월부터 9월이 건조한 겨울철이다. 그래서 보통 9월 말이 되면 나무에 새순이 돋는 봄이 찾아온다고 하는데 우리에겐 분명 익숙지 않은 계절이 변화임이 분명하다.

 

다 자라면 거대한 우산 모양의 수관을 만들며 독특한 자태를 자랑하는 미인수는 세 가지 두드러진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무시무시한 가시로 덮인 밑둥이 불룩한 줄기이고, 둘째는 눈에 확 띄는 붉은 꽃들, 그리고 마지막은 솜털로 가득한 씨꼬투리다. 이렇게 볼거리가 많은 미인수는 관상용으로 널리 퍼져나가게 되었는데, 특히 미국 플로리다 남부, 캘리포니아와 하와이 등에서 사랑을 받았고, 1970년 이후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가로수 등으로 아주 인기 있는 나무가 되었다.

 

 

 화려한 꽃의 난무

먼저 다섯 장의 꽃잎을 갖고 있는 꽃은 무궁화와도 비슷한데, 가운데 부분은 약간 누런 빛이 도는 흰색으로 갈색 반점이 있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분홍색을 띤다. 하지만 가장자리 꽃 색은 한 나무에서도 색조가 다양해서 아주 여린 분홍색이 있는가 하면, 보랏빛을 띠는 빨간색, 짙은 보라색 또는 진홍색 등을 나타낸다. 나이든 나무일수록 꽃은 더 보기가 좋다. 이 꽃들은 아주 큰 제왕나비 종류들을 유혹한다. 신기하게도 꽃이 필 때가 되면 잎들이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꽃이 만발할 때쯤엔 빈 가지에 꽃들만 가득차게 된다. 꽃들은 난초나 백합에 견줄 정도로 아름다워 인기가 높다. 꽃색이 적포도주같이 빨갛게 피는 로스앤젤레스 뷰티풀(Los Angeles Beautiful)과 짙은 분홍색 꽃이 피는 마제스틱 뷰티(Magestic Beauty)와 같은 품종들도 있다.

 

 

  가시 돋친 나무의 일생

어린 시절 녹색을 띠는 미인수의 줄기는 뾰족한 원뿔 모양의 가시들로 덮여 있는데 나이가 들면서 나무 밑둥 부분이 바오밥나무처럼 병 모양으로 부풀어오르며 회색으로 변해 가고 가시들도 점차 무뎌진다. 푸릇푸릇한 가시를 지닌 날카로운 젊음이 나이가 들면서 무뎌지며 회색빛의 넉넉한 나무 모양을 갖추고 배도 나오게 된다는 것이 왠지 우리네 인생사와도 닮은 점이 있다. 2년생 가지의 마디로부터 생겨나는 가시들은 무섭다기보다는 보기에 따라 이 나무가 더 근사해 보이는 특징이 되기도 한다. 어린 나무들이 초록색을 띠는 이유는 줄기에 엽록소가 많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잎이 없을 때에도 광합성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나무는 왜 나이가 들면서 몸통이 비대해지게 된 걸까? 그것은 건기와 우기가 뚜렷한 남미의 기후적인 특성 때문이다. 몇 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에 대비하여 우기 때 최대한 물을 몸통에 저장해 놓는 것이다. 보통 나무 줄기의 2/3부분까지 불룩해지는데, 가장 굵은 부분은 허리 둘레가 2미터 가까이 되기도 한다.

 

 

 솜털이 되어 날리는 열매

미인수는 꽃이 예쁘지만 열매를 보는 즐거움도 크다. 아보카도처럼 생긴 열매는 익어감에 따라 껍질이 갈라지며 열리는데 그 안에는 말 그대로 목화솜이나 명주솜 같은 솜 뭉치가 가득 들어 있다. 그리고 그 솜 안에는 콩만 한 씨앗들이 숨어 있다. 이렇게 열매가 터져 솜털이 날리게 되면 누구나 그 밑을 지나가다 한번쯤은 궁금해 하며 위를 올려다보게 된다. 씨앗이 이렇게 털로 둘러쌓인 것은 바람에 의해 다른 곳으로 날아가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 땅으로 떨어졌을 때 다른 설치류로부터 씨앗을 위장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지역민들 역시 이 솜털을 다양한 용도로 이용하는데, 케이폭(kapok, Ceiba pentandra)이라는 나무에서 나오는 솜털보다 품질은 떨어지지만, 미인수의 솜털은 매우 가볍고 섬세해서 매트리스와 베개, 소프트볼 등을 채우는 용도로 쓰인다. 특히 방수 기능까지 갖추고 있어 구명 조끼 등에 사용되는데 그 무게의 30배 이상 되는 무게를 지탱할 수 있다. 지역민들은 이 나무가 정령을 갖고 있고 그 솜털들에 서려 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아야와스카(Ayahuasca)라는 성스러운 음료를 만드는 의식에 이 솜을 날리기도 하고 나뭇껍질을 그 음료에 넣기도 한다. 그 밖에 씨앗으로부터 식물성 기름을 추출하여 식용, 산업용으로 사용한다.

 

 

배수가 잘 되는 토양을 좋아하는 미인수는 여름엔 특히 물을 좋아한다. 그리고 아마도 겨울엔 물을 적게 주어야 원래 살던 고향땅과 비슷한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미인수는 영하 5도까지 월동이 가능한데, 여기에 이 나무의 보다 적극적인 활용에 대한 가능성이 있다. 즉 미국에서는 온도에 따라 식물이 자라는 지역을 19구역으로 나누었는데, 이러한 USDA 기준에 의하면 미인수가 자라는 지역은 9b, 즉 평균 최저 온도가 영하 3.9도에서 1.1도 사이다. 여미지식물원이 위치한 제주는 10b, 즉 평균 최저 온도가 영상 1.7에서 4.4도이므로 사실 미인수는 제주에서 바깥에서도 겨울을 날 수 있다는 얘기다.

 

미인수와 비슷한 나무 중 가장 인기 있는 식물은 바로 바오밥나무(Adansonia digitata)인데, 미인수는 바오밥나무처럼 줄기가 비대해지는 특성 외에도 아름다운 꽃과 독특한 열매, 그리고 온몸을 덮은 가시가 볼 만하여 특히 정원에서는 그 활용도가 적지 않은 나무다.

 

 

 

 

 

  •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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