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상 나 무
한라산 높은 정기의 상징
구상나무를 빼놓고는 제주도의 식물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한라산
꼭대기에서 자라는 그 고귀한 기상도 높지만, 피라미드 형태의 반듯한 수형을 가지고, 하늘을 향해 신비롭게 솟아오른 열매들을 달고 아름답게 자라는 모습은 경외롭기만 하다. 이 기품 있는 나무가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 크리스마스 트리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신비로운 분포>
원래 러시아 극동 지역 등 아주 추운 고산 기후에 자라는 구상나무가 우리나라 따뜻한 남쪽 제주도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게 된 것은 어찌된 일일까? 도대체 얼마나 오래전에 지구의 대지가 움직여 이렇게 아름다운
섬과 신비로운 오름들이 만들어지고, 이렇게 귀한 식물들이 한라산에 모여 자라게 되었을까? 구상나무는 전나무속에 속하는데 이 같은 식물들 중에서 제주도와 같은 동북아시아 최남단의 섬에 격리되어 분포의
중심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거의 세계적으로 드문 일인 것이다. 특히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절멸위기종으로 분류되어 있는 이 나무가 한라산 천연보호구역에 세계 최대 규모의 광대한 면적의 순수한
숲으로 형성이 되었다는 것은 매우 놀랍다.
<세상의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다>
구상나무는 프랑스로부터 해외 파견 선교사로 한국에 온 포리 신부에 의해 1907년 처음 제주도 한라산에서 발견되었다. 하지만 일본의 식물학자
나카이 타케노신은 1913년 제주도식물조사보고서에서 구상나무가 분비나무와 동일하다고 보고하였다. 구상나무와 분비나무의 생김새가 거의 비슷했기 때문인데, 그 후 하버드대학교
아놀드수목원의 어니스트 윌슨이 1920년 구상나무를 분비나무와 다른 신종으로 발표하였다. 윌슨에 의해 미국과 유럽에 알려지면서, 구상나무는 곧 정원수와 크리스마스
트리와 같은 경제성 높은 상품으로 개량되어 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윌슨을 비롯한 당시 서양 학자들은
우리나라의 식물을 발견하고 정리하는 데 큰 공로를 세웠지만, 우리나라 식물들을 외국으로 반출했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식물의 가치를 알고 그만큼 체계적인 연구를 하지 못한 우리의
책임도 큰 것이다. 오늘날에도 외국의 식물원들은 세계 여러나라의 식물을 수집하여 자신들의 정원에서 귀하게
가꾸고 새로운 품종으로 개량하여 재배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의 다양하고도 세계적으로 가치 높은 식물들은
대부분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색깔 있는 나무>
곧은 줄기로 아름다운 수형으로 자라는 구상나무는 열매의 색깔도 가지가지다. 원래 구상나무의 열매는 자줏빛 또는 보랏빛을 띠는데 이와 다르게 검은색, 붉은색, 푸른색을 띠는 구상나무가 있다. 지금까지 모두 5개 품종과 9개 재배품종이 알려져 있다. 구상나무는 한라산에서 해발 1,200미터부터 드물게 분포하기 시작하여 1,300미터부터 숲을 형성하며 자라는데, 한라산 외에도 지리산과
덕유산, 무등산에도 분포한다. 제주에서 구상나무는 성게를
뜻하는 '쿠살'과 나무를 뜻하는 '낭'을 합쳐 쿠살낭으로 불렀는데,
구상나무의 잎이 성게 가시처럼 생겨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이 구상나무는 제주의 전통 뗏목인
테우(떼배)를 만드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